첫 번째 옥토버페스트
옥토버페스트는 다른 독일 민속 축제에 비해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첫 번째 축제는 1810년 10월 12일에 열렸으며,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 황태자와 작센의 테레지아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경마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습니다. 경마가 열렸던 잔디 공원은 나중에 공주의 이름을 따서 테레지엔비제로 명명되었습니다.
루드비히 1세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 있었고, 신하 중 한 명이 고대 올림픽처럼 축제를 개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첫 번째 옥토버페스트는 스포츠 중심의 축제로 개최되었습니다. 바이에른 왕실은 이 축제를 너무 좋아해서 다음 경마를 다시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옥토버페스트의 시작이었습니다.
민속 축제로의 진화
19세기
1850년 축제가 열리는 공원 앞에 20미터 높이의 바이에른 동상이 세워졌고, 1853년에는 그 뒤에 루메샬레라는 건물이 완공되어 지금까지 축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콜레라와 전쟁으로 인해 축제가 중단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축제의 규모가 커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속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날씨가 더 따뜻하고 맑은 9월로 옮겨지면서 축제 기간이 연장되었고, 이러한 변화로 옥토버페스트는 이제 10월 마지막 주말에만 열리게 되었습니다. 1880년 시 당국은 맥주 판매를 허용했고, 1881년에는 구운 소시지(브라트부르스트)를 파는 최초의 '헨들브라테라이(Hendlbraterei)'가 문을 열었습니다. 전기 조명이 400개 이상의 텐트를 비추고, 양조장에서는 더 많은 방문객이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거대한 맥주 홀(비어할레)을 만들었습니다.
20세기
1910년 옥토버페스트는 100주년을 맞이했고, 120만 리터의 맥주가 소비되었습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축제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1919년과 1920년에는 대규모 축제가 열리지 않았고 소규모 가을 축제만 열렸습니다. 1923년과 1924년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축제가 다시 한 번 취소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는 축제가 전혀 열리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소규모 가을 축제만 열릴 수 있었어요. 옥토버페스트는 처음 시작된 이래 24번이나 취소되었습니다.
1950년 뮌헨 시장 토마스 빔머는 최초의 맥주통 토핑 행사로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제 옥토버페스트의 필수적인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후 옥토버페스트는 세계 최대의 민속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1980년 9월 26일, 축제장 입구에서 폭탄이 터져 13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옥토버페스트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중 6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옥토버페스트의 오늘
옥토버페스트에는 현재 매년 600만 명의 방문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방문객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중 약 15%는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이며 이탈리아, 미국, 일본, 호주인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과도한 음주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034년, 축제장이 술에 취해 난장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용한 옥토버페스트'(Ruhigen Wiesn)라는 단체가 결성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텐트 운영자에게 17시 이전에는 전통 관악 음악만 연주하고 음악 소음을 85데시벨 이하로 유지하도록 요구합니다. 밤에는 대중음악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옥토버페스트가 전통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가족과 노약자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